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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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 과거에 유난희 도움을 주지 않던 부모가 있었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꽤나 어려웠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으면 빚을 얻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며, 또한 빚은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언가 빚을 진 사람들이 그 부담감 때문에 바로 답례를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사람들이 꼭 주고 싶어 하는 선물들이 있고, 때론 빚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기도 한다.

가끔은 받아들이는 것도 재능이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래버는 인류가 화폐를 발명한 이유가 물물교환 방식이 불편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필요도 없는 사람에게 스웨터를 60벌 줄 테니 자신이 만든 바이올린을 달라고 말하는 게 옳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래버에 따르면 화폐가 출현하기 전, 사람들은 물물교환이 아니라 그저 필요에 따라 혹은 물건의 유무에 따라 이것저것 주고받았을 뿐이다. 서로 빚을 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었고, 그런 주고 받음이 불완전하게나마 계속 이어지며 공동체는 유지되었다. 화폐는 이전 체제에서는 완결될 필요가 없었던 거래, 마치 몸 안의 순환계처럼 작용하던 그 주고받음을 완결짓기 위해, 그를 통해 단절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안되었다. 화폐는 우리의 몸들을 따로 떨어지게 하고, 우리가 그렇게 떨어져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케냐의 리프트 밸리 근처 투르카나 호숫가에 사는 어떤 부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을 찾은 손님에게 양을 한 마리 잡아서 대접하겠다고 말한 그는, 자신의 목장에 있는 양 떼가 아니라 이웃의 가난한 농부가 키우던 몇 마리 되지도 않는 양 중에 한 마리를 잡았다. 어리둥절해하는 손님에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이 이웃의 양을 잡아서 대접했기 때문에 이제 그 손님도 의무감과 미래의 답례라는 그물망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그건 손님과의 유대를 키우고 손님의 지위를 높여주는 행동이자 양 한 마리보다 훨씬 큰 호의를 베푸는 행동이라고 말이다. 물건들은 쌍방향으로 흘러다니기 마련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이야 말로 더 중요한 것이고, 가난한 이웃은 양 한 마리를 잃음으로써 더 부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호의는 비상식량, 비가 올 때나 겨울, 수확이 없는 시기를 대비해 비축해 두는 식량과 비슷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이 상상했던 것보다 많음을 발견하는 일은 뿌듯하다. 사람들은 사방에서 모여들었고, 나는 아름답게 보살핌을 받았다. 친구 안토니아가 중간에서 병문안 오는 사람들의 일정을 조정해 주었다. 나중에 회복기가 되자 삶이 늘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사람들이 보낸 꽃다발에 묻혀 지내고, 모두 나를 도와주려 하고 걱정해 주는 삶. 하지만 그건 내가 그것들을 필요로 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필요로 할 때마다 그것들을 얻을 수도 있다. 내가 필요로 할 때 그것들이 거기 있었음을 인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모든 것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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