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고책읽기] 닉 다이어-위데포드, <공통적인 것의 유통>, <<자본의 코뮤니즘, 우리의 코뮤니즘>> 중

읽을거리

2018년 6월 21일 세번째 책읽기 모임이 혜화동 책방이음에서 열렸습니다. 

서원, 소연, 정훈, 모호, 지음, 상혁 6명이 모여서 <<자본의 코뮤니즘, 우리의 코뮤니즘>>을 함께 읽었습니다. 

7장 닉 다이어-위데포드, <공통적인 것의 유통>을 함께 읽었습니다. 

다음 빈고 책읽기모임 (4회차)

– 시간 : 2018.06.28 목요일 7:30

– 장소 : 해방촌 책방 온지곤지 (용산동2가 1-80)

– 함께 읽을 책 :  김성구, <경제무식자, 불온한 경제학을 만나다>, 나름북스


– 문의 : 빈고폰 010-3058-1968

– 모임 소개 : 2018 공동체은행 빈고 책읽기모임에 놀러오세요.

아래에 같이 읽은 부분 발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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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재에 대한 이런 재발견이 활동가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이것이 저 어두운 역사를 연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집단적 소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통상 계획경제와 억압적 국가기구로 이해되는 ‘공산주의’를 즉각 떠올리고 해명하는 일 없이도, 집단적 소유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해줬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공통재에 대한 낭만주의적 설명은, 공통재가 엄청나게 강압적인 봉건주의의 보완물이었다는 사실을 종종 간과한다. 오늘날의 공통재 역시 전지구적 자본의 주변적이고 유용한 부속품에 지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다.




(자본순환의 도식) 맑스의 자본순환 개념은 상품이 화폐로 변태되어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이렇게 변형된화폐는더 많은자원을 획득해 더 많은상품으로 변형시킬 것을 명령한다. 이런 자본의 순환은 M – C ..P.. .C – M’의 공식으로 표현된다.



(자본순환의 도식의 자본별 변형) 이런 순환속에서 맑스는 서로 다른 종류의 자본을 확인한다. 상업지본, 산업자본, 금융자본이 그것이다 예컨대 상품을 화폐로 변형시키는것 (C-M)은상업자본의 역할이다. 상품들을 수단으로하는 상품의 생산(P)은산업자본에 의해 수행되며 화폐자본의 생산자본으로의 전환(M-C)은 금융자본의 표면상의 임무이다.



(투쟁순환의 도식) 자율주의는 자본의 유통이 투쟁의 유통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본순환의 매 계기는잠재적 갈등의 계기이다. 따라서 노동력 상품을 구매하려는 시도(M-C)는 정처 없이 떠도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만들어내기 위해 토지로부터 주민을 축출하는 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투쟁에 의해 중단될 수 있다. 생산(P)의 계기는 고전적인 작업장 저항의 장소였다. 상품의 화폐로의 전환(C-M)은 도둑질에서부터 공적 재전유에 이르는 위험들에 취약하다.

이 각각의 화약고는 다른 화약고에 불을 붙일 수 있으며, 그리하여 서로 연결될 수 있다. 이는 반자본 투쟁의 개념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확장시키면서) 직접적인 생산 지점에 대한 고전적 맑스주의의 집중을 분산시켰다. (그것이 아무리 불완전하게 전개됐더라도) 다중이라는 아이디어의 근저에는 잠재적으로 상호연결된 투쟁들의 확장하는 궤도에 대한 생각이 놓여 있다.



(공통적인 것의 순환 도식) 우리는 투쟁의 유통에서 공통적인 것의 유통으로 가는 또 하나의 단계를 상정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세포형태가 상품이라면 자본을 넘어선 사회의 세포형태는 공통적인 것이다. 상품은 교환을 위해 생산된 재화이지만 공통재는 공유되기 위해 생산되는 재화이다. 교환을 위해 생산된 재화인 상품은 그 교환을 가능케 하는 사적 소유자들을 전제한다. 공통적인 것이라는 관념은 공유를 가능케 하는 집단들을 전제한다.


공통적인 것의 순환은 내가 어소시에이션이라 이름붙인 이 집단성들이 창의성, 기계류, 천연자원 등을 포함하는 공통의 자원을 어떻게 생산적 앙상블로 조직해왔는지를 추적한다. 이 생산적 앙상블은 다시 새로운 어소시에이션을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따라서 새로이 쓰여진 유통 공식에서 C는 상품이 아닌 공통재를 의미하며 화폐로의 변형이 아닌 어소시에이션으로의 변형이 일어난다. 따라서 기본 공식은 다음과 같다.A-C-N. 이는 다음과 같이 더욱 구체화될 수 있다. A- C ..P…C-N. 

자본의 유통이 상업자본, 산업자본, 금융자본으로 세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공통적인 것의 순환에서 각기 다른 계기들을 식별해야 한다. 이 계기들을 각각 생태사회적 공통재 the eco-social commons 노동 공통재 the labour commons 네트워크 공통재 the networked commons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생태사회적 공통재에는 계획기구들, 전지구적 기후 통제, 어획 매장량 관리 , 유역微 보호, 오염 예방 퉁이 포함될 수 있다. 이들을 생태사회적 공통재라고 이름붙인 것은 이와 동일한 계획 논리가 전염병관리 및 공중보건 서비스 공급, 식품유통 규제, 인류의 삶을 상업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전략적 기회로 이해된 것과 다른 의미에서의 생명공학적 관리감독에도 똑같이 적용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노동 공통재는 생산적 노동 및 재생산 노동의 민주적 조직화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노동자 협동조합, 노동자 경영 공공기업 , 농촌 사회에서의 토지 재분배가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노동 공통재는 기본소득 혹은 보장임금의 도입 같은 조치들을 포함할 수 있을 정도로 더욱더 폭넓게 이해되어야 한다.


네트워크 공통재는 오픈소스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용어가 리눅스같은 혁신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네트워크를 상품이 아닌 집단적 사회 기반시설로 탈바꿈시키는 일체의 공식적·비공식적 투쟁을 포함한다. 우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뿐만 아니라 공공 기관에서 오픈소스 실천을 대규모로 채택하는 것, 상업적 지적소유권을 완화시키는 방식으로 문화 생산자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것, 그리고 P2P 시스템에 대한 접근을 전화만큼이나 공통적인 시설로 만드는 교육과 기반시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커머니즘 commonism’은 다양한공통재들의 연결과 유통으로 구성된 사회적 질서이다. 커머니즘은 현재의 새로운 공통재들을 연결시키고 기존 관계들이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양의 공통재들을 축적함으로써 이 공통재들에 대한 자본주의적 흡수와 포섭을막는다 자본이 상품의 거대한 더미라면 커머니즘은 공통재의 증식일 것이다. 나, 그리고 네그리와 하트는 이것을 ‘공통체’라 부른다.

커머니즘은 공통적인 것에 기반을 둔 삶의 방식을 지향하고 구현하려는 모든 이론적 ·실천적 노력을 의미한다. 커머니즘은 한편으로 자본주의가 무참히 부수어버린 공유지 (the commons)에서의 삶에 대한 기억을 이어받으며,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형성된 잠재적 ·현실적 공통재 (commons)를 미래의 공통체 (commonwealth) 구성의 바탕으로 삼는다. 커머니즘은 기존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전통에서 볼 수 있었던 (국가)권력의 추구와 당에 의한 매개라는 요소를 거부하며, 그 대신 다중의 활력이 분출하는 자율적 표현을 핵심으로 하는 절대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우리는 이 기획을 지금 당장 구축할 수 있다. 우리는 시장의 즉각적 폐지를 단언할 필요가 없으며, 그 중심체계를 강력한 ‘공통재’의 역학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그것에 종속되어 있는 하부체계로 변형시키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크리스토프 슈페어가 ‘제국을 넘어서 [제국보다 더 잘] 협력하기’라고 묘사한 과정이다. 이런 논의가, 다가오기 마련인 근본적인 위기의 순간 혹은 순간들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이 논의가 제안하는 바는 공통재의 유통이 그런 순간에 선행하고, 그 전제조건을 확립하며, 그런 순간을 넘어서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과제는 국가를 접수하거나 분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자체가 (공통재를 배양하고 성장시키는 기계로서) 국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때, 슬라보예 지젝은 옳다. 


운동들의 운동은 강력한 반국가주의적 입장의 자율주의와 아나키즘 그룹, 그리고 정부계획 ·복지에 몰두하는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운동들로 암암리에 쪼개져 있었다. 이 두 극사이의 가능한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 공통적인 것의 유통은 관료제와 폭정에 대항할 수 있는 자율적 조직들을 만들어내야 하고, 또 이들이 계획의 아이디어에 다양성과 혁신을 제공할수 있는 조건을 구축해야 하며, 다원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계획과 반계획은 서로에게 서로를 붙박아 넣어야 한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말을 빌면, 언제나 적어도 두 개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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