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고책읽기] 송제숙, <혼자 살아가기-비혼 여성, 임대주택, 민주화 이후의 정동> 중

읽을거리

20180607 빈고 책읽기모임 첫번째 책으로 같이 읽은 책입니다. 

예비조합원 두 분을 포함해서 8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서문과 2장 <비혼여성의 불안정한 주거와 재정> 부분을 함께 읽으면서 얘기 나눴습니다. 

논문형식이지만 비혼여성들의 인터뷰가 많아서 재밌었습니다. 

또한 전세제도와 금융화 부분에 대한 분석은 아주 주목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읽었던 부분 중 일부를 발췌합니다. 

다음 모임에도 부담없이 참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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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p

한국의 맥락에서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중산층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에게도 안정된 가정을 꾸리기 위한 기반으로서 의미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임대주택은 노동빈곤층에게는 어쩔 수 없이 주된 주거형태가 되었지만, 중산층에게는 집을 소유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거치는 임시주거형태였다. 이 책은 임대주택의 가장 주요 형태인 전세, 전월세, 월세를 주시할 것이다. 2장은 임대 시스템이 세입자의 관점에서는 저축 매커니즘이고, 집주인의 관점에서는 신용대출의 기회라는 관점에서 임대시스템과 금융시장 간의 관계를 상세히 살핀다. 

89p 퇴적화된 금융화

오늘날의 금융화에는 기업자본뿐만 아니라 연금, 주택담보 대출, 신용카드, 자잘하게 늘어나는 서비스 요금을 통해 금융자본주의 메커니즘에 투자하는 개인들의 돈까지 개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와 힐퍼등 시대의 금융자본과는 다르다고 보기도 한다. 

라파비차스는 신용거래와 금융서비스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필요로 하는 개별 가정을 발판으로 신자유주의 안에서 30년간 켜켜이 쌓인 금융자본주의를 “일상생활의 금융화”라고 정의한다. …

한국에서는 금융화의 상황이 더 복잡하다. 이는 한국이 최근에 발전하여 뒤늦게 세계자유시장에 뛰어들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도래하기 훨씬 전,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비공식적인 금융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비공식적인 금융시장은 공식적인 금융투기의 규모와 양태에 비교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자본의 생산보다는 화폐자본의 순환을 우선시함으로써 (특히 이자에서 이윤을 남김으로써) 자산을 마련하는 자산증식의 논리와 욕망이라는 측면에서 양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엘리어카의 간명한 지적처럼 비공식 시장은 친족구성원이나 이웃같은 1차적인 사회적 네트워크에 크게 의지한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착취 과정은 훨씬 복잡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월스트리트 금융화’라는 라파비차의 맥락과 구별짓기 위해 가정경제의 뿌리 깊은 토대를 이루고 있는 비공식적인 금융시장을 ‘퇴적화된 금융화 sedimented financialization’라고 부를 것이다. 퇴적화된 금융화는 한국인들의 일상적인 실천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월스트리식 금융화라는 이름의 이 새로운 금융화를 (순환의) 속도와 (불안의) 강도, (금융 계급의 양극화라는) 영향 면에서 더욱 가속화시킨다. 

우리가 한국의 자본축적 과정을 이해하려면 (전세주택과 비공식적인 대출, 그리고 나중에는 전 지구적인 시장을 통한) 이 같은 금융투자 기법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 자본주의는 산업생산을 통해 국가적인 이윤의 축적을 주도하는 양대기둥을 국가와 재벌로 바라보는 ‘발전주의 [자본주의] 국가’의 틀에서 주로 설명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가계 경제수준에서 대체로 비공식적인 금융시장을 통해 삶의 안정성과 자산을 관리하는 불안정한 소득계층에 대한 보다 세밀한 이해가 필요하다. 

105p 전세시스템과 계

전세시스템과 계는 동시에 작동하는데 넬슨은 이를 “창의적인 민간 신용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넬슨은 1990년대 초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비공식 금융시장의 대출금리와 전세보증금에 대한 월세계산 비율이 2%로 일치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이 즈음 한국의 사채업 혹은 고리대금업이 가정과 중소기업의 현금순환을 독차지하게 된 것과도 연관이 있다. …

한국에서 계는 옛날에는 비축했던 쌀 등의 물건을 필요하거나 위급한 사람에게 돌아가면서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아마도 불안정했던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 한국전쟁 시기에 믿음직한 금융신용 조직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농촌 지역보다는 도시에서). 개별가정이 은행 대출도 받지 못하고 저축에 대해서도 합당한 이자를 받지 못했던 경제개발 시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더욱 확대 조정되었다. …

생존과 사회적 비용 때문에 모두가 목돈의 현금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계는 단지 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목돈의 용도는 주거(구입과 임대 모두), 교육(공교육과 사교육 모두), 결혼(결혼식을 직접 치르든 하객으로 참여하든), 모든 종류의 경조사 비용 등 다양하다. … 화폐자본이 많은 사람일수록 화폐선물을 거래하기 더 좋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계급화된 관행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참여 방식은 계층을 넘어서 누구다 다 받으면 줘야 한다는 호혜성의 원리를 토대로 삼고 있다. 

결혼은 목돈을 이용해 자녀 결혼 비용을 상쇄하고, 신혼 여행, 가구, 주택 등의 형태로 신혼가정을 지원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한국에서 현찰 목돈에 대한 필요와 그 공급은 계급과 관계없이 보편적이며 정상화되어 있다. 즉, 사람들은 화폐시장을 통해 소득을 창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략, 다시 말해 (이자를 통해) 돈을 버는 돈에 이미 익숙하다. 

중산층은 두번째 집을 다른 사람에게 임대할 수 있고, 노동계급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일부를 임대하여 얻은 목돈을 굴려 나중에 자녀가 태어나거나 성장했을 때 더 큰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세보증금은 모두에게 유리했다. 목돈의 보증금 확보는 주택이나 아파트 현금 구입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전략이다. 한국의 많은 중산층이 이런 보증금을 잘 굴려서 노동계급에서 중산층으로 계층 이동을 했다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전세의 교환가치가 높긴 하지만 한국 세입자들은 앞서 지적했다시피 월세는 돈을 날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직업이 불안정하고 소득이 불규칙한 세입자들은 월세를 낮추기 위해 보증금을 높이고 싶어한다. 

116p 금융위기 이후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은 화폐자본(이자 낳는 자본)의 범위와 형태를 전방위적으로, 특히 포인트카드와 같은 유사현금 제도의 창출을 통해 확대했다. 좀 더 안정적인 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주식시장과 공식적인 신용대출시장을 이용할 수 있으며, 포인트카드 제도는 가처분소득이 많지 않은 청년, 학생, 어린이들까지도 공략한다. 금융자본주의의 중심부가 젊은 층으로부터 그 광대한 인프라의 씨를 뿌리면서, 이런 식으로 이자 낳는 자본의 논리, 즉 이자를 통해 혹은 포인트와 마일리지를 쌓아 비록 공짜일지언정 화폐자본력을 늘릴 수 있다는 신화가 확산되었다. 하지만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출발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기반이 있으며, 이 현상은 포인트카드 같은 금융상품을 이용하여 자산을 축적하는 작은 규모의 관행에 의해 도전받기 보다는 오히려 정당화된다. 

이런 종류의 금융상품과 선택지를 이용하는 ‘재테크’라고 하는 행위는 사회경제적 안정을 얻고자 한다면 일반인에게도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개인들은 더 이상 평생고용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국가관료주의가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평판 때문에 새롭게 발족한 국민연금 역시 신뢰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내 연구 참여자들은 자신이 이런 자산증식 기법들을 제대로 이용하고 있는지 걱정스러워했다. 대부분은 미래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사적인 금융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비용에 관계없이 모두가 이런 기법들을 이용할 수 있고, 유일한 변수는 정보를 관리하는 개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듯 싶었다. 

121p 결론 부분

요컨대 한국의 임대 제도는 집주인이 집세만 받는 시스템이 아니라 목돈의 현금을 비공식적으로 손에 넣어 돈놀이를 할 수 있는 장치인 것이다. 아시아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금융기법들이 등장하여 사람들의 일상생활 곳곳으로 침투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이용된 자산증식 수단의 중추인 임대주택의 중요도가 더욱 확대되었다. 나는 이 지점에서 퇴적화된 금융화와 월스트리트식 금융화과 한국의 신자유주의 속에서 융합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례를 토대로 생각했을 때, 주택금융 영역에서는 구매 뿐만 아니라 독특하게도, 임대 제도 역시 이자 낳는 자본을 축적하는 핵심 요소이며 이는 자본주의 축적 과정에 노동계급의 의도하지 않은 동참을 통해 실행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금융자본을 허구적이라고 일반화시켜버릴 경우 임금과 목돈의 현금 운영 모두가 한국의 맥락에서 계급을 막론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중요한 양식이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비공식 금융시장을 통해 가계자산의 관리가 이루어졌고, 이렇게 관리된 가계자산이 주택(및 임대) 시장에 투기되면서 아시아금융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국가경제의 몰락을 초래하기보다는 오히려 국가경제를 지탱함으로써 공식적인 금융시장을 크게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비교는 투기를 자본주의적 축적의 믿음직한 방법으로 옹호하는 월스트리트 은행가 등의 견해를 지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금융화와 금융시장이 주로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로에 좌우된다는 솔깃한 일반화에 도전하기 위함이다. 

요컨대 이제까지 나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주거안정성 및 금융안정성을 저해하는 다섯가지 구조적 제약의 집합을 다루었다. 첫째, 한국전쟁 이후 경제는 목돈의 현금과 그 이자를 개별 가정의 자산 축적을 위한 주요 수단이자 원천으로 활용하는 독특한 금융시장을 발달시켰다. 둘째, 전세를 이용하는 보편적인 관행은 목돈 순환의 핵심 고리다. 셋째, 임대주택의 경우 까다로운 요건과 관료적인 평가절차 때문에 임대주택에 받는 금융상품과 대출 기회가 제한적이다. 넷째, 금융법과 은행조례는 특히 임대주택 대출 신청 자격요건에 정규직 일자리 규정과 연령 규정을 넣음으로써 결혼한 부부와 규범적인 가정이 당연히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듯이 명시해 놓았다. 다섯째, 일반적으로 여성들,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비혼 여성들은 대출 자격요건인 정규직 근무 기록을 제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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