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한편으론 채워지지 않는 소비욕구 때문에 불타고 있었다.
사고 싶은 건 많은데 돈은 없고 매번 그놈의 현명하고 계획적인 소비를 한다고
한번 옷을 살 때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야 하니 힘들었다.
충족되지 않는 나의 소비욕구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나는 욕구를 충족시켜줄 신세계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
2편에 이어서 3편이 계속됩니다.
빈자의 재무설계 1편 나는 왜 불안한가? http://goo.gl/6t2QWu
빈자의 재무설계 2편 나는 왜 촌스러운가? http://goo.gl/Vd6MSU
그것은 바로 구제 옷이었다. 2009년 겨울 나는 부산에 혼자 여행을 갔다.
당시 동생이 부산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회사가 구해준 숙소가 있었기 때문에
부산여행을 감행했던 것이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 가려다가 들린 국제시장에서
구제골목을 알게 됐고 매우 질 좋은 니트를 5천원에 구입하게 된 후 나는 구제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니트 한번 사려면 5만원 정도 드는데 10분의 1 가격으로 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기쁘지 아니할쏘냐. 항상 옷을 살 때 전전긍긍하며 한 벌을 간신히 사거나
돈이 아까워 옷을 들었다 놨다 하는 애끓음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다니!
서울로 돌아와 한 일은 인터넷 구제쇼핑몰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여러 사이트를 검색하고 이 사이트, 저 사이트 다니며 구제옷을 찾아내는 일은 무지 즐거웠다.
정말 싸고 질이 괜찮은 옷들을 모아놓은 구제 사이트를 찾아냈을 때에는
심봤다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잡지와 티비에서는 철철마다 머스트해브아이템이란 것을 소개했다.
매 철마다 옷을 사도 매번 입을 옷이 없는 상황이 계속 벌어졌다. 걱정없었다.
구제옷은 가격이 싸니까 품목별로, 색깔별로 이것 저것 사들일 수 있었다.
온라인 외에 간간이 동묘역앞 벼룩시장 등도 찾아 구제 옷을 사는데 열을 올렸다.
물론 문제점도 있었다. 당장에 입을 옷이 아닌데도 싸다는 이유로 옷을 쟁여놓는 일이 많아졌다.
싸다는 이유로 한 벌 구입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벌을 동시 구매하기 때문이었다.
주로 인터넷에서 사다보니 입어보고 사는 것이 아니므로
막상 사고 나니 옷을 못입는 경우도 여전히 발생했다.
입어보고 사는 경우도 한 두 번 입고나면 편하지 않아서, 별로 안예뻐서 등등으로 쌓아두는 옷이 생겼다.
하지만 ‘가격이 싸잖아. 나는 정말 이 정도면 현명하고 검소한 소비를 하고 있다고.
그리고 약간의 시행착오다.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시켰다.
나의 소비행태를 돌아본 건 3월에 대구의 공동체를 방문해서 보게 된 한 책 때문이었다.
대구에 ‘내가 그린 우리집’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이 공동체 얘기는 나중에 좀 더 하겠다.)
그 집 책장에는 박민규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꽂혀 있었다.
나는 이 소설이 출간됐을 때부터 강하게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이 못생긴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외모에 열등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많았고
열등감이 많은 여자와 그를 사랑하는 남자에 관한 소설의 전개가 궁금했다.
책은 두꺼웠고 공동체 방문시 시간이 많지 않아 뒷 부분만 읽었는데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었다.
주인공 ‘나’가 그녀랑 헤어지고 한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할 때의 상황을 쓴 부분이었다.
회사안에는 자신이 예쁜 걸 너무 잘 아는 여성이 있었고 그 여성의 미모에 회사전체가 들썩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성을 닮기 위해 회사 전체 여직원들이 변해가는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사무실은 정말이지 그럴 듯한 곳이 되어갔다. 뭐랄까,
순식간에 평균이 쑤욱 올라간 느낌이었고 … 쇼핑 … 쇼핑…쇼핑…
이 정도는 걸쳐야, 이 정도는 발라야, 그리고 결국… 이 정도는 고쳐야-로
스펙의 평균도 상승해 버린 것이었다 (중략)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러움이었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끄러움이었다.
닮으려 애를 쓰고 갖추려 기를 쓰는 여자애들을 보면서 이것은 자가발전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부러움과 부끄럼이 있는 한 인간은 결코 자본주의의 굴레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럴 듯한 인생이 되려 애쓰는 것도 결국 이와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생각도 들었다.
이왕 태어났는데 저것도 한번 타봐야겠지, 여기까지 살았는데 저 정도는 해봐야겠지,
그리고 긴긴 줄을 늘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삶이 고된 이유는… 어쩌면 유원지의 하루가 고된 이유와 비슷한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영웅을 필요로 한다.
잘 좀 살아, 피리를 불 누군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략)
쫓고 쫓기는 경쟁은 그 뒤에서 시작된다.
서로를 밀고 서로를 짓밟는 경쟁도 그 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하멜른의 어떤 쥐들도 피리부는 자를 앞서 뛰진 못했지’
“부러움과 부끄럼이 있는 한 인간은 결코 자본주의의 굴레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 문장이 그날 확 다가왔다. 사실 전혀 처음 듣는 새로운 얘기는 아니었다.
유행이 패션산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패션산업이 유행을 만들어내고,
미디어로 소비를 조장하며, 소비로 욕구를 채울수록
소금물로 목을 축일 때처럼 갈증만 더해 간다는 것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알고 있었는데도 ‘부러움’과 ‘부끄러움’이란 단어가 목에 콱 막혔다.
나는 무엇을 부러워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했는가.
나는 인기많은 사람을 부러워했고 내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나는 인기인이 되고 싶었다. ‘옷을 잘 입는 것 = 인기많은 사람’이란 공식이 성립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계속 촌스럽다는 지적을 받게 되니 옷을 더 산다면 촌스러움이 해결되고,
옷을 더 산다면 인기도 많아지고, 옷을 더 산다면 사람들에게… 그만하자. 쓰다보니 슬프다.
예전에 고등학생 과외를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그 학생이 소위 ‘명품’에 집착하는 아이였다.
명품을 사서 몸에 걸치면 자기 존재감이 드높아진다고 생각하는 듯 해서 안타까웠다.
돈을 써서 얻는 만족감이 오래 가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명품을 사면 살수록 그 만족의 기간은 줄어들었다.
6개월 가던 만족감이 한 달, 그러다가 일주일을 못 갔고 그럴수록 부모님을 졸라 명품을 사들였다.
그때의 그 아이와 나는 무엇이 다른가.
그 애는 한 번에 몇 십 만원을 사고 나는 몇 천 원 짜리를 사니 등식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싸다는 이유로 한 벌도 간신히 사던 옷을 몇 벌씩이나 한 번에 사들이고
그렇게 사서 옷 몇 가지만 입고 나머지는 쌓아두기만 하는 나의 행태는 하멜른의 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소비를 한다 해도 옷을 코디하는 미적 감각을 키울 수는 없는 것이고,
미적 감각이 없다면 옷 소비에 열을 올려봐도 여전히 촌스러운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했다.
또한 촌스럽다는 말을 듣기 힘들어하는 내 안의 숨은 욕망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도.
그러면서 그 다음날부터 가계부라는 걸 써보기 시작했다.
그렇다! 소위 재무상담을 한다면서 나는 내가 무척 현명하고 검소한 소비생활을 하기 때문에
가계부같은 걸 작성하지 않아도 생각했다!
가계부를 작성한다면 아주 꼼꼼히 정확하게 써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도 쓰기 싫음에 한 몫했다.
하지만 꼭 정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한 달 구제옷 구입비를 적어봤을 때
오마이갓! 한 번에 적은 돈을 지출하니 검소하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야금야금 사들이는 구제옷의 총 금액은 꽤 컸다.
매달 총 금액에 해당하는 옷 한 벌을 산다면 그것은 과소비이고,
이렇게 야금야금 모아서 산다면 그것은 과소비가 아닌가?
나는 내가 결코 검소하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스트레스 받을 때 멍하니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 가서
옷을 구경하거나, 구제사이트를 뒤적이는 일을 끊지는 못하고 있다.
예전보다 줄어들었지만 나는 우울할 때 습관처럼 구제옷 사이트를 간다.
그래, 중요한 발견은 ‘우울할 때’이다.
우울함을 벗어나기 위해 나는 다른 어떤 것을 해봐야 할 것인가.
인기인이 되고 싶다는 나의 욕망은 채워질 수 없는 것인가?
결국 옷 소비의 늪을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인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거기에 숨겨진 욕망은 무엇인가?
그 욕망은 채워질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을 드리며 이번 글을 마치고자 한다.
P.S :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자본주의에 대한 통찰 외에 사랑에 대한 통찰도 명문장이 많다.
참 가슴시려하며 읽었다. 마지막에 작가의 후기를 봤다.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신혼 때 아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아내가 ‘내가 못생겨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못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는 없기에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맥이 빠졌다. 작가는 나를 기만했어!!
어찌됐든 재무상담은 010 3058 1968 빈고폰으로.
독자들에게 떡밥을 던져 놓고 한 달을 기다리게 하다니…나쁜 곰자 -_-+
참고로 곰자의 입지 않는 구제옷들은 마을 장터에 나왔다가
반 정도는 선택을 받지 못하고 다시 곰자의 손으로 돌아 왔다는 슬픈 전설이.. ㅠㅠ
ㅎㅎ아무리 싼 물건 이라도 과소비는 과소비이다~ 가슴에 와 닿네요!!!
내가 지금 어디에 돈을 주로 쓰고, 거기에 숨겨진 욕망은 무엇인지??
한번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독자들에게 떡밥을 던져놓고 한달을 기다리게 하다니… 나쁜 곰자+++++
그치만, 너무 사랑스러운 글이니까 용서한다.
곰자를 이시대, 마음을 사정없이 파고들어 살포시 즈려밟아 눈물한방울을 뚝 떨어지게 만드는 환상의 문장가로 임명합니다.
(디디)
게다가, 저 글사이에 적절한 짤방을 적확한 타이밍으로 배치하는 감각이라니! (디디)
내가 그린 그린집 -> 내가 그린 우리집
ㄴ 앗 죄송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솔직한 곰자 글.
재밌다.
유익하다.
대다나다!!!!!!!
저도 중고 의류 판매하는 곳만 보면.
쉽게 지나치질 못해요..
꼭. 필요한 종류의 옷들을 평소에 생각해뒀다 적절한 곳이 가서 구입하기보다,
기회다 싶을 때(괜찮은 구제옷가게 발견!!).
옷을 사다보니
늘- 옷에 대해 마르지 않는 목마름이 있는 듯.
꼭 마음에 드는 옷 구입해서
입을 때 마다 기분 좋고.
아끼며 오래오래 입는 옷 구매!
이제부터 할랍니더..
(마침 오늘 드디어 겨울옷 정리중인데,
작년에 한번도 안입은
있는 줄도 몰랐던 싸구려 티들..
오메.. 겁나 많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