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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서 블로그, <한델스방켄 – 금융업의 본질은 '관계'>
DBR, <작은 마을 공략… 지점장 전결… 탈레반 같은 이 은행>
DBR, <은행계의 ‘탈레반’ 한델스방켄: 분권화된 점조직으로 40년 신뢰를 잇다>
[경제민주화 시대의 경영] Interview |
은행계의 ‘탈레반’ 한델스방켄: 분권화된 점조직으로 40년 신뢰를 잇다 |
스웨덴 2위 은행이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은행으로 꼽히는 한델스방켄(Handelsbanken)은 경쟁은행들로부터 ‘탈레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1)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대의 시골마을들에서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게릴라 군사조직인 탈레반처럼 한델스방켄 역시 다른 은행들이 수익성 때문에 가지 않는 작은 마을에까지 지점을 낸다는 의미다. 또한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인 탈레반처럼 한델스방켄 역시 은행업의 ‘근본’인 직원과 고객과의 유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 있다. 마지막으로 탈레반이란 별명에는 비대칭적인 경쟁우위로 시장을 잠식해 다른 ‘일반’ 은행들을 곤혹스럽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한델스방켄은 주주뿐 아니라 고객과 직원, 지역사회, 협력회사와 함께 커가는 경제민주화 경영모델을 40여 년째 실천해오고 있으며 특히 2008∼2009년의 금융위기 이후 영국 소매은행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871년 설립된 한델스방켄의 자산은 2012년 6월 기준 416조 원으로 한국 최대인 우리은행(243조 원)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스웨덴 은행 고객만족도 평가에서도 1989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1위를 독차지해왔다. 금융위기 동안에는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없었고 블룸버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은행’ 랭킹에서 2011년 2위, 2012년 10위를 차지하는 등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언론과 은행 산업 종사자들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델스방켄의 성공비결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지점 위주, 고객 위주의 경영을 표방한다. 고객 가까이에 가기 위해 어느 정도 수익성의 하락은 감내한다. 스웨덴 내 400여 개 지점 중에 다른 은행은 수익성이 떨어져 들어오지 않은 작은 마을에 있는 지점이 50여 개나 된다. 또, 전 세계 모든 지점 직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핸드폰 번호까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어 고객들이 언제든지 담당직원과 통화할 수 있다. 상당수 지점은 토요일에도 문을 연다. 마치 탈레반 점조직처럼 모든 예산과 운영에 대한 권한은 상부의 간섭 없이 각 지점장이 갖고 있다.
지점별 영업과 분권화를 중요시하는 한델스방켄의 문화를 두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는 ‘교회 종탑 원칙(church-tower principl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2) 각 지점의 영업 범위는 마을의 교회 종탑을 볼 수 있는 범위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각 지점에는 직원이 고객을 1대1로 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응대하게 한다.
둘째, CEO부터 창구직원까지 모든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자기가 하는 일에 큰 책임을 진다. 예를 들어 대출 승인은 본사에서 만든 컴퓨터 알고리즘이 아니라 고객을 제일 잘 아는 직원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또한 1만1000여 명의 직원들은 회사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매년 초과 성과분(업계 평균보다 많이 번 돈)을 전 직원에게 직급에 관계없이 동일한 액수로 나눠주는 ‘옥토고넨(Oktogonen)’ 펀드는 1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대신 다른 은행들처럼 개인별 실적에 따라 배분하는 성과급은 없다. 단기수익이 아닌 장기적 건전성과 성장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한 분기, 혹은 한 해 단위의 수익이나 손해는 경영상 노이즈에 불과하다고 보고 연간 수익목표나 본사차원의 예산계획은 세우지 않는다.3) ‘은행의 단기 수익성은 외부 상황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전 CEO 얀 발란더(Jan Vallander)의 철학 때문이다. 성과급을 모아두는 옥토고넨 펀드 역시 60세가 돼야 찾을 수 있어 직원들이 장기적 안목을 갖고 회사를 위해 일하도록 유도한다.
셋째, 주주들에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약속한다. 이 은행은 다른 은행들처럼 ‘1등을 하자’, 혹은 ‘주주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돌려주자’라고 외치지 않는다. 단지 주주에게 ‘업계 평균보다 많은 투자수익(to have a higher return on equity than the average of peer banks)’만을 주는 것이 이 은행의 웹사이트와 연간보고서에 명시된 공식 경영목표다. 화려함보다는 꾸준함이 장점이다. 실제로 1970년 이래 업계 평균수익률 이하를 기록한 적이 없다. 2008년과 2009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정부의 정책지원을 받지 않고 배당금까지 지급해 다른 은행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사기도 했다. 주주들에게 단기적으로는 ‘평균 이상’의 수익만을 약속하는 대신 장기적인 안정성과 건전성을 최고의 가치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웨덴의 대형 연금펀드와 뮤추얼펀드가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1) ‘Sweden’s Back-to-the-future banker’, Financial Times, 2013년 1월 14일
2) ‘Back at the branch’, The Economist, 2009년 5월14일
3) ‘언리더십: 직원을 경영의 대상으로 보지마라’ DBR 110호, 2012년 8월
한델스방켄 – 금융업의 본질은 '관계'
골때리는 은행이 있다. 이름은 한델스방켄(Handelsbanken). 스웨덴에 본사가 있고 북유럽 3국과 독일, 영국 등에 지점이 700개인가 있다. 특히 작년 재작년 영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단다. FT 표현에 따르면(링크) 매주 지점 하나씩 여는 속도란다.
영 국에서 이 은행이 급성장하는 이유는 '옛날 스타일'로 지점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은행이나 우체국을 가보면 알겠지만 정말 삭막하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가 차례가 오면 마치 슈퍼마켓 계산대처럼 서서 창구직원과 대화를 하도록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직원이 무슨 방탄유리같은 부스 뒤에 앉아있기도 하다. 기분이 별로 좋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한델스방켄은 직원들이 매우 친절하게 고객을 응대해준다는거다. "헬로, 메리~ 오랫만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아드님은 학교 잘 다니시고요? 지난번에 내가 추천해준 식당 가봤어요?" 이런 식으로.
심지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지점 직원들의 사진과, 전화번호와, 심지어 핸드폰 번호까지 나와있는 곳도 있다. 여기 독일 뮌헨 지점과 영국 옥스포드 지점의 홈페이지를 보라(링크). 전 직원의 연락처와 자기소개도 있다. 고객과 직원의 관계를 돈과 돈의 관계가 아닌 사람 대 사람, 이웃 대 이웃으로 생각하는 거다.
뮌헨 지점은 세 명의 직원들의 핸드폰 번호와 구사하는 언어까지 적어놓았다. 옥스포드 지점의 직원은 자기는 개 한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며 축구팀 아스톤빌라를 응원한다고 썼다.
과 연 대한민국의 은행들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만일 어떤 은행에서 지점 직원들의 핸드폰 번호와 신상내역을 홈페이지에 공개하자고 하면 아마도 노조에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날 거다. 물론 경영진들도 싫어할거다. 인권침해, 사생활침해라 할거다. 하지만 한델스방켄은 다르다. 이들은 업무와 사생활을 분리하지 않는 것이다. 본인들의 업무는 고객들, 즉 동네 사람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교육받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객과 페이스북 친구도 기꺼이 맺을 것이다.
이 런 걸 두고 'back to the old banking'이라고 한단다. 영국에도 예전에는 은행에 가면 직원들이 고객과 개인적인 친분을 맺으려 노력했단다. 은행은 교회외 더불어 한 마을의 가장 중심이 되는 커뮤니티였다. 하지만 최근 20-30년 동안 신자유주의, 주주자본주의의 바람이 불고 또 은행권도 수익과 비용절감에 눈을 뜨게 되면서 돈이 되지 않는 창구고객 같은 건 대충대충 상대해도 된다는 문화가 생긴거다. 그런데 한델스방켄이 들어와서 마치 1960년대 그랬던 것처럼 사근사근하게 대해주니 인기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럼 한델스방켄은 비용절감이 중요하지 않나? 이 은행은 돈 벌기를 포기했나? 아니다. 돈 엄청 잘 번다. 자산규모는 400조 원이 넘는다. 우리나라 최대인 우리은행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2011년 순익이 2조 원이었고 작년은 더 많았을 거다. 또 블룸버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은행'에서 2011년 2위, 2012년 10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다.
이런 비결이 뭔지 궁 금해 한델스방켄의 부행장(vice president)이자 해외업무를 총괄하는 마그누스 우글라(Magnus Uggla) 씨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친근한 은행답게, 우글라씨는 흔쾌히 30분간의 전화인터뷰를 허락했다(실제론 40분으로 시간 오버했지만). 인터뷰의 요약문은 동아일보에 실렸고 (여기 링크), 상세한 인터뷰 기사는 DBR에 실렸다(여기 링크. 기술적 이유로 유료다운로드가 불가능하신 분은 저에게 이메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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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아일보와 DBR이 실린 기사에서는 나는 이 은행을 '경제민주화'의 모델로 설명했다. 이 골때리는 은행은 당장은 지점 운영에 돈이 많이 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수익 최대화' 혹은 '1등을 하자'가 목표가 아니라, '중간만 가자'가 이 은행의 공식 목표다. 진짜다. 홈페이지에도,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연간보고서에도 그렇게 나와있다.
대 신에 매우 안정적이다. 중간만 가자는 목표를 지난 40년간 지키지 못한 적이 없다. 1970년 이후 매년 은행업계 평균수익률 이상을 기록해왔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1970년에 취임한 CEO 얀 발란데르(Jan Wallander) 때문이다. 발란데르는 원래 경제학자 출신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다보니, 은행의 수익이라는 것이 은행 스스로 잘해서 생긴다기보다는 그때그때 경제상황에, 그리고 정부 정책기조에 엄청나게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은행 수익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이자율 같은 것은 중앙은행이 정해주는 것이다.
따 라서 발란데르는 은행의 실적을 평가할 때 분기 혹은 연간 단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최소 몇 년, 길게는 몇십 년을 놓고 보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은행의 본분은 고객과의 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직원들과 고객들이 오랜 시간 친분을 쌓아가며, 서로를 신뢰하며 발전하는 은행 모델을 만든 것이다.
위 의 옥스포드 지점 직원의 소개를 보면, 넷웨스트라는 다른 은행에 오래 근무하다가 한델스방켄의 경영철학이 맘에 들어서 옮겼다는 내용이 있다. 실제로 한델스방켄의 봉급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라 한다. 하지만 직원들의 충성도는 매우 높다. 고용이 안정적인데다가, 지점 직원의 권한이 많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좋아하는 것은 자신들이 마치 로봇처럼 일하는 게 아니라 앞에 마주앉은 고객과 서로 안부도 묻고 하면서 인간 대 인간으로 일하는 것이다. 그러니 한델스방켄에서는 다른 곳보다 급료가 적어도 들어오겠다고 지원하는 사람들이 들어오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니 조직 전체의 분위기도 좋아지고 이런 해피바이러스는 다시 고객과 파트너들에게 전해진다.
나 만 해도 그렇다. 우글라 부행장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행복과 만족감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졌다. 그래서 그가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내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신문과 잡지, 블로그에까지 한델스방켄을 광고해주는 글을 세 개나 쓰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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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델스방켄의 전설적인 CEO, 얀 발란데르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은 '옥토고넨'이라고 하는 독특한 보너스 시스템이었다. 사실상 한델스방켄의 장기적, 인간적, 공동체적 문화의 중심이 되는 제도다. 이 은행에는 개별 성과급이나 부서별 성과급이 전혀 없다. 대신, 업계 전체 평균보다 초과된 수익의 1/3을 전 세계 전 직원에게 똑같이 분배한다. 직급같은 건 상관없다. 사장도, 말단 창구직원도 똑같은 액수를 받는다.
단, 이 돈은 현금으로 당장 받는 게 아니라 '옥토고넨'이라는 펀드에 투자되고 이 펀드는 전액 한델스방켄 주식에 투자된다. 진짜 골때리는 건, 직원들은 60세가 되기 전까지는 돈을 받을 수 없다. 회사를 때려쳐도 마찬가지다. 60세 되기 전에 꼭 받고 싶으면 일찍 죽는 수 밖에 없다.
황 당한 발상이긴 한데, 효과는 만점이다. 어차피 60세까지 기다려야 하니 직원들은 하루 하루 혹은 일 년 일 년의 실적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또 모두가 동일한 액수를 받으므로 직원들 상호간의 경쟁은 하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노령 연금으로 활용된다. 그런데 연금치고는 아주 든든한 연금이다. 현재 30년 근속자의 경우 인당 1백만 유로(14억 원) 정도가 옥토고넨에 적립되어 있다고 한다. 엄청난 금액이다. 원래 돈을 많이 줘서가 아니다. 순 적립금액은 10%에 불과하고, 90%는 한델스방켄의 주가 상승분이다.
이 런 상황이니 장기근속자가 일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겠나. "올해 보너스 많이 받자"가 아니라, "20년 후에 은퇴할 때 회사 주가가 최대한 많이 올라가도록 꾸준히 일하자"고 생각할 것이다. 또 직원들 서로 서로 "우리 서로 경쟁할 필요 없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가며 회사가 잘되게, 회사 주가가 장기적으로 꾸준히 올라가게 도와가며 해피하게 지내자"라는 공감대가 생기게 된다. 아….. 옥토고넨을 만든 발란데르는 진짜 천재였던 것 같다. 감히 이런 발상을 누가 하겠는가. 알면서도 감히 따라하기 힘든 그런 제도다.
(옥토고넨은 한델스방켄의 실질적인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반 직원 대표가 옥토고넨도 대표해서 은행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은행의 주인이 직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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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는 쓰지 않았지만, 한델스방켄의 '지점 중시, 인간적 관계 맺기' 모델이 성공한 이유가 또 있다. 이것은 은행업의 본질에 관련된 것이다.
은행업이란 무엇인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대출), 돈이 남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예금저축)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과 돈이 남는 사람을 연결해준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사람 중개업' 혹은 '정보 중개업'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결혼정보업체나 신문사와도 비슷하다.
단, 결혼정보업체와 신문사는 정보를 전달하는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를 직접 받지만(회원가입비나 정기구독료가 바로 그 수수료다) 은행은 수수료보다는 '이자'로부터 수익을 챙긴다. 돈을 빌리고 빌려줄 때 이자율을 책정해서 그 차이에서 수익을 남긴다. 이자율을 책정하는 기준을 '신용(credit)'이라고 부른다. 알다시피, 신용이 좋은 사람은 싼 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고 신용이 나쁜 사람은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 반대로, 신용이 좋은 우량 은행은 이자를 조금만 줘도 사람들이 저축을 하고, 신용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제2, 제3 금융권은 높은 이자를 줘야지만 사람들이 돈을 맡긴다.
현 대 은행업에서는 이 신용을 거의 기계적으로 평가한다. 기업이나 국가의 경우, 3대 신용평가사라고 불리는 무디스, 피치, S&P에서 매기는 신용등급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A-라는 둥 하는 것이 그거다. 개인의 경우도 신용평가기관에서 여러 가지 조건들을 고려해서 신용등급을 결정한다. 카드빚이 있다든가 대출 연체 기록이 있다든가 심지어 핸드폰 요금을 미납한 기록이 있는 사람들은 개인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것이다. 은행에서 고객의 신용을 평가할 때는 이러한 외부 신용평가기관의 평가등급을 이용하기도 하고, 또 자체적인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평가하기도 한다. 이렇게 나온 등급으로 이자율을 매기는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과연 어떤 기업의, 어떤 국가의, 어떤 사람의 신용등급을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의문이 생긴다. 사람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또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신용은 달라지는 게 아닐까?
예 를 들어 내가 친구 최장우에게 10만 원을 빌렸을 때와 친구 빌 게이츠에게 10만 원을 빌렸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두 친구에 대해서 나는 그 돈을 갚으려는 의지에 큰 차이가 있다. 우선 나는 최장우에게 10만 원이 빌 게이츠에게 10만 원보다 훨씬 중요한 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나는 최장우를 빌 게이츠보다 훨씬 자주 본다. 마지막으로, 나는 절친인 최장우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가끔 보는 친구인 빌 게이츠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보다 맘이 훨씬 더 불편하다. 이상의 세 가지 이유로 인해 나는 기왕이면 빌 게이츠보다는 최장우에게 돈을 빨리 갚을 것이다. 경제학 용어로 말하면 최장우에게 돈을 갚아야 할 인센티브가 더 크다.
신 용평가기관이 나의 신용등급을 평가했을 때 B라고 나오더라도, 실제로 나의 신용은 빌게이츠에게는 C이고 최장우에게는 A일 것이다. 따라서 빌게이츠는 나에게 돈을 빌려줄 때 받지 못할 위험성을 생각해 이자를 높게 부르고 싶을 것이다. 최장우라면 내가 돈을 반드시 갚으리라고 생각하고 이자를 따로 받지도 않을 것이다(물론 치맥을 사라고 요구할 수는 있다).
헌데 현실의 은행업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내가 특별하게 오래 거래해온 주거래 은행이 아니라면, A은행에 가든 B은행에 가든 내 신용등급은 동일하게 평가될 것이고 나에게 매겨지는 이자율도 거의 비슷할 거다.
한 델스방켄에서 직원들이 고객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나와 최장우처럼 친한 관계가 되고자 하는 것과 같다. 은행직원이 고객의 신용등급을 향상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고객이 돈을 갚게 하려는 의지를 향상시킬 수는 있다. 고객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 한델스방켄과 바클레이 은행에서 똑같이 100만 원을 빌린 고객이라면, 자신이 돈을 갚지 않을 경우 친하게 지내던 직원에게 피해가 가게 되는 한델스방켄에 먼저 갚고 싶을 것이다. 개 한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 직원이 있는 은행이라면 더욱 더 애용할 것이다.
이 는 바꿔말하면 같은 고객에게 대출을 해주더라도 한델스방켄이 더 낮은 이자율을 제시할 수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거꾸로 예금하는 고객들은 한델스방켄이 다른 은행보다 저축이자를 조금 덜 주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신뢰의 차이로 인한 금전적 이익을 수 치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아마 한델스방켄은 하고 있을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 똑똑하다. 그들이 지점에 투자하는 돈(토요일에도 영업하는 지점이 많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이자율 측면의 이익을 다 계산기 두드려 보았을 것이다.
다 른 은행에서도 VIP 고객 우대 서비스 같은 것은 있다. 하지만 은행 전체의 시스템이 이렇게 고객과의 관계 중심으로 짜여져있는 곳은 한델스방켄 뿐이다. 100원짜리 하나를 맡겨도 이웃으로 대해주는 은행이다. 금융의 본질이 '사람 중개업'이라는 것을 발란데르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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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델스방켄은 경제민주화의 모델로서 국가 경제정책과 개별 기업의 경쟁력에 있어 많은 시사점을 준다. 거기에 더해 특별히 금융업계에 두 가지 교훈을 던져준다. 첫째, 은행업은 자유경쟁시장이 아닌 공공인프라산업이다. 우체국이나 수도공사와 같은 업종이다. 이런 산업에서 단기수익을 챙기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옳지 않다. 사회를 위해 서비스하는 업이라는 생각이, 그리고 사회와 함께 성장하겠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둘 째, 장기적으로 은행이 다른 은행보다 더 영업을 잘 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신용을, 그리고 은행의 신용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용은 상대적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신용도가 달라진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한델스방켄이 'old banking' 모델로 돌아간, 그리고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다.
p.s. '옥토고넨'은 라틴어로 8을 의미하는 'okto(octo)'에서 왔는데, 처음 이 펀드를 만들 때 8인의 이사회? 같은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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